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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세계의 구성과 현실의 불확실성
이선영(미술평론가)
후텁지근한 여름날에 열린 이소영의<Mystery Art Museum>전은 일본의 전자 음악가 토미타(Isao Tomita)의 ‘전람회의 그림’을 들을 때 같은 서늘한 청량감을 준다. 이러한 느낌은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작품의 성격으로부터 비롯된다. ‘예술적 실험’이란 이러한 파격적인 연결고리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기존의 작품과 구조들은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메체를 통과하며, 이를 통해 창출된 가상의 시공간은 관객을 단번에 다른 공간에 옮겨 놓는다. 작가는 백남준 아트센터, 환기미술관, 영은미술관 등 실제 존재하는 미술관의 도면을 받아 축소모형을 만들고, 그 내부를 사진으로 찍어 컴퓨터상에서 재구성하며 여기에 미술사에 등장하는 작품들을 배치한다. 신비한 푸른 빛이 도는 텅 빈 공간에 배치된 작품들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부터 백남준에 이르는 12명의 예술가들의 것이다. 미술사의 유명 작품들은 새로운 맥락에 배치되면서 다르게 보여 질 뿐만 아니라, 놓여 진 상황에 따라 공간을 변형시킨다. 전시장에는 출력된 사진과 공간의 실제 모형, 설치 작품들로 채워지며, 그자체가 상상의 미술관 같은 양상이다. 출력물은 대게 홀수로 쪼개지며 배열되고, 6개의 판이 입체적으로 설치된 작품도 있는데, 그것은 이소영의 작품에 내제된 시공간의 간격과 중첩이 현실공간에서 구현된 것이다. 미술사의 작품이나 미술관은 코드와 모형으로 호출되며, 여기에서 일어나는 현실적 차원의 삭감은 객관성의 의미를 다르게 규정짓는다. 객관성은 단지 있다고 간주되는 사실이 아니라, 또 다른 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여기에서는 대상보다는 구성요소들 간의 긴밀한 관계가 중시된다. 구체적 사실의 축소를 확장의 계기로 삼는 이소영의 작품은 리얼리즘이라는 모델처럼 단지 현실의 연속이 아니다. 그러한 연속성은 확실성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비롯된 사실주이의 관행은 그녀의 작품 <이상 도시>에 나타난 것처럼, 연극적 무대장치의 연출과 관련된다.
이렇게 현실을 보는 창문으로써의 관습은, 언어를 단지 사물들을 중성적으로 실어 나르는 도구라고 간주하는 사고방식이 전복됨에 따라 해체되기 시작한다. 컴퓨터 업이 결코 완성할 수 없는 이소영의 작품은 전자매체에 의한 무한대의 조합적 구성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기호의 자의성과 자율성이 극단화된 단계를 의미한다. 언어적 구성물로 이루어진 이 허구적 세계는 객관적 세계와 무관하게 스스로 의미를 생성하는 체계이다. 이러한 독립성과 자족성은 오히려 든든해 보이는 참조물을 요구한다. 척보면 알아볼 수 있는 대가의 작품들과 실제 공간의 모형이 동원된 것은 허구와 실제, 구조와 사건 사이에 벌어진 변증법적 운동을 위한 전략이다. 이소영의 작품은 틀과 차원의 경계를 명확히 함을 통해, 작품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혼합과 중첩에 내포된 의미를 극대화 시킨다. 그것은 무차별적인 혼돈을 넘어서, 작품에 대한 작품이나 미술관에 대한 미술관 같은 메타적 차원으로 이동한다. 퍼트리샤 워(Patricia Waugh)는 <메타 픽션>에서 현실을 허구와 분리시키는 틀에 주목한다. 메타 픽션적인 성격을 가지는 예술작품은 시작과 경계의 자의적 본질을 명백하게 논의하면서 시작한다. 허구는 단지 상이한 여러 가지 틀의 집합이며, 관습들과 구조들의 상이한 결합이다. 틀의 분석은 즉 경험 조직의 분석이며, 예술형식의 관습을 분석하는 것이 된다. 리얼리즘에서는 그 틀이 정확히 감지되지 않으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진행될수록 틀은 전면화 된다. 이소영은 자신의 맥락을 통해서 미술사를 다시 쓰는데, 그것은 퍼트리샤 워가 말하듯이, 하나의 세계모델을 만들기 위해 사건들을 언어적으로 배열시키는 허구적 행위에 해당된다. 그것은 역사적 현실이 사건들 자체만큼이나 사건들의 극화라는 것이다. 비록 역사가 물질적인 현실일지라도 언제나 텍스트의 경계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역사를 허구 내지 대안세계의 집합체로 보는 것이다. 요컨대 이소영의 작품에서 강조되는 것은 텍스트로서의 역사, 즉 개인이 구성해낸 역사이다.
-퍼브릭 아트 리뷰 201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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