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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위의 시선
박 영 택 (미술평론가/경기대학교 교수)
이소영의 작업은, 조각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각적 대상의 몸을 빌고 나타나지만 우리들의 시선을 부재에 빠뜨린다. 결국 그녀의 조각은 일종의 장치이다. 우리들의 눈을 요구하고 들여다보도록 배려하지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본다는 행위, 어떤 대상과의 만남이라는 심리적 상황만을 슬쩍 이야기하고는 사라져버린다. 허망하고 찰나적인 긴장과 접촉이 스파크처럼 일어났다가 이내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그런 체험은 기묘하게도 환각적이고 착란적이다. 사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대상과 나와의 일시적인 만남이다. 내가 시선을 주었을 때 비로소 그 대상은 나와 관계를 맺는다. 시선이 거둬지면 대상은 사라진다. 세상이 존재한다기보다는 그 세상과 나와의 찰나적인 만남의 지속이 세계를 있게 한다. 그것은 결국 특정한 시간 속에서 대상과의 관계의 영역으로 들어왔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세계는 어떤 것일까? 본다는 것과 그 대상에 대해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니까 이미지를 인식하는 기관인 ‘눈’을 통해 대상을 ‘안다’라고 하는 인간의 시지각 활동 및 그에 기반해서 이루어지는 모든 미술적 행위(재현)에 대한 반성을 깔고 있다는 생각이다. 나와 세계는 분리되지 못하고 하나이면서 또한 떨어져 있다. 결국 이소영은 우리에게 그 관계의 영역을 만들어 공간에 부려놓았다. 각자 그 관계의 영역 안으로 자발적이든 권유에 의해서든, 작가가 만들어 놓은 매개를 기반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객들의 몫이 중요한 지점이다.
우리는 그로 인해 새삼 그 대상을 확인하기보다는 늘상 세계와 대상과의 만남이란 관계의 영역으로 들어가 비로소 이루어지는 어떤 삶의 과정들을 만난다. 나 자신을 새삼스럽게 감촉하는 것이다. 만남을 통해 수시로 변하는 순간순간의 자신의 생각을 뒤쫓고 그 생각의 갈래를 만나고 오는 것이다. 어떤 여정을 감각화 시킨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소영은 ‘무(구멍)’를 보여주는지 모르겠다. 거울의 표면과 수면은 거울을, 물을 보여주기보다는 자신의 얼굴을 느닷없이 비쳐준다. 예기치 않은 자신이 거기에 들어가 있다. 거울의 표면, 물의 표면은 거울이나 물이라는 존재의 피부이기도 하고 살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공허와 구멍 같기도 하다. 들여다보는 자의 얼굴과 몸을 받아주는 깊이다. 물은 그 안쪽을 보여주기보다는 표면에서 반사되는 일정한 상들로 끊임없이 출렁인다. 흔들리는 상이 물살 속으로, 파문아래 잠기거나 사라지거나 다시 출몰한다. 드러냄과 지워짐 사이를 현기증 나게 반복한다. 그것은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는 기이한 풍경이다. 대상도 아니고 전적으로 자신만도 아닌, 보이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아닌, 그 두 개의 존재가 함께 얽혀 있는 기묘한 풍경 말이다. 그 속에서 작가는 다만 여정, 이동, 만남을 행할 뿐이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대상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그것은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떠돈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대상,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부유하는 그런 존재를 어떻게 가시적 영역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전시장이란 곳은 분명 우리들의 눈에 호소하기 위해 작업들이, 물질들이 서식하는 곳이다. 망막에 의존하는 모든 작품들이 그렇다. 이소영은 그 곳에 망막만으로 들여다볼 수 없는 것, 한 눈에 포착되지 못하는 것, 그러나 부재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을 상상 시킨다. 대상과 주관적인 나의 시선, 눈이 분리되지 못하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나로서는 이런 체험은 우리들의 눈과 그 눈에 의존한 동시대의 시각 이미지의 맹목을 은연중 비판적으로 사유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막중심주의의 미술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가시와 시키려는 노력은 물론 현대미술에서 두드러진다. 이전에도 신이나 천사 등을 시각적 대상으로 끌어들임으로서 그것을 보고자 욕망했었다. 현대 미술은 인간의 내면, 심리, 정신 같은 비가시적 영역 마저도 시각적 대상으로 변화시켜 내놓았다. 이것 역시 어떻게 보면 시각, 망막에 대한 절대적인 맹신 속에서 가능한 것 같다.
이소영은 비가시적 세계, 대상과의 만남, 그러면서도 그것을 시각적으로 재현해서 전시장이란 공간에 놓아야하는 미술, 조각의 근원적인 모순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주변에서 관찰한 대상들을 차분하게 들여다보고 그것과 자신과의 신체적 만남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 이번 근작들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매우 여성적인 시선이자 몸의 체험이다. 이전 작업과 큰 차이를 보이지를 않지만 좀 더 그럼 생각들이 단단해졌다는 느낌이다. 나로서는 이렇듯 비가시적 세계를 절대적으로 시각화시키는 대신 그런 존재를 어떻게 우리가 보고 느낄 것인가라는 문제를 상당히 개념적이면서도 조각적 방식 안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그녀에게 있어 작업들은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빛으로, 반사되는 표면으로, 구멍으로 우리들의 시선과 몸, 감각을 끌어들인다. 그리곤 대상을 지우고 감추고 다만 순간적인 만남으로 파생되는 어떤 찰나적인 반응에 주목시킨다. 단순한 표면에서의 마주침을 넘어서서 침묵하는 이면의 존재와 만남을 통한 움직임과 이야기에 우리들의 주의를 요구하는 그런 조각이다. 그것은 대상을 가시화하는 게 아니라 있음을 보여주는, 느끼게 하는 그런 방식이며 작업이다. 현실이자 비현실의 경계가 함께하는 그런 풍경이다.
2001 개인전 서문-이면으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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